우울을 쓰기
이 책은 다음의 간단한 전제에서 시작되었다. 우울증은 생물학적 현상이나 의학적 현상이 아닌 사회적, 문화적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문화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장은 절대적으로 반박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하는 책은 아주 뻔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책이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울증의 범주가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요구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구성되었는지를 역사학적, 계보학적 조사를 통해 보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그 주장의 바로 그 진부함을 지적하는 것이 이 책에서 내 주제의 일부를 이룬다. 의학 담론에 대한 역사적 비판이 가치가 있는 만큼이나, 이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것도 아주 잘) 하였기 때문에, 이는 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대신에, 더 중요한 것은 문화 연구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다른 곳에서는 상식적인 관점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이 단절이야말로 내 진정한 관심사이다. 치료할 수 있는 질병으로 우울증을 구성하는 의료 및 과학계 내에서, 특히나 임상적인 치료의 긴급성이나 새로운 약리학적 발견의 맥락에 있어서, 우울증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라는 전제는 그저 무관한 것이며, 의심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대중적인 이미지 속에서는 의학 모델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우울증은 비록 만연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발견되고, 진단되고, 치료될 수 있는 병이기 때문에 관리가 가능하다는 레토릭을 담고 있다. 비록 강력한 경제적, 제도적 이해관계에 의해 강화된 바도 있지만, 이러한 상식적인 이해는 특히 생물학에 기초한 의료 모델이 개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개인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데다가, 압도적이고 분산되고 복잡한 경향을 띄는 사회적, 문화적 분석과는 대조되게 가시적인 해결책들을 만들기 때문에 널리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