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종과 함께 실뜨기하기
도나 해러웨이
번역 : 소현
다종(多種, multispecies) 스토리텔링과
반려자들의 실천
실뜨기는 마치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이 상처 받은 연약한 지구 위 참여자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실뜨기 모양을 제안하고 또 시범을 보인다.
1 나의 다종 스토리텔링은 살기만큼이나 죽기로, 시작만큼이나 최후로 가득하다. 심지어 제노사이드로 가득한 복잡한 역사 속에서 치유(recuperation)를 말한다. 다른 종이 든 실타래 속에 넘쳐나는 구체적이고도 역사적인 고통 앞에서, 나는 화해나 회복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부분적 치유와 공존에 헌신하고 싶다. 이를 곤란함과 함께 머물기(staying with the trouble)라고 하자. 그래서 한편으로 나는 진짜 이야기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사변적 우화이기도 하고 사변적 리얼리즘이기도 한 이야기. 그것은 차이를 가로지르는, 결함이 있는 부분적 통역에 휘말린 다양한 종족의 참가자가 살기와 죽기의 방식을 아직 가능한 유한한 번창과 치유에 맞춰나가는 이야기다.
‘SF’는 사이언스 픽션, 사변적 페미니즘(speculative feminism), 사이언스 판타지, 사변적 우화(speculative fabulation), 과학적 사실(science fact), 그리고 또 실뜨기 놀이(string figures)를 내포하는 표지다. 실뜨기 놀이는 모양을 주고받고, 실을 떨어뜨리며 실패하다가도 이따금 유효하게 작동하는 전에 없던 무언가를, 결정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이다. 지구의 대지 위 유한한 번창이 이루어지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유의미한 연결을 전하고, 손을 맞잡고, 손가락에서 손가락으로, 의미가 기입가능한 자릿수 마다 접합 부위와 접합 부위를 이어 이야기하는 일이다. 실을 받고 전하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 실을 주고 받는 리듬을 유지하는 한, 어떤 부위로든 많은 사람과 실뜨기를 할 수 있다. 학문과 정치도 이런 점에서 실뜨기와 비슷하다. 실뜨기도 학문과 정치도, 열정과 행동, 가만히 있기와 움직이기, 고정하기와 시작하기를 요구하는 꼬이고 뒤얽힌 실타래 속에서 주고 받는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경주용 비둘기는, 내가 실뜨기라고 생각하는 풍부한 세계짓기(worldings) 속에서, 다양한 사람, 지리, 다른 크리터(critter),
2 기술, 그리고 지식과 함께, 살고 죽는 실천의 형태를 빚는다. 이 장은, 다양한 실제 비둘기와 비둘기의 폭넓은 자취가 열어준 한 무더기의 매듭 중 첫 실마리다. 내 모든 이야기에 등장하는 생물은 테라폴리스라고 하는 n차원 틈새 공간에서 살아간다. 내가 우화화한 테라폴리스의 중적분방적식은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변적 우화이며, 다종 세계짓기를 위한 실뜨기 모형이다.
Ω
∫ 테라[x]n = ∫∫∫∫ . . . ∫∫테라(x1,x2,x3,x4, . . . ,xn,t) dx1 dx2 dx3 dx4 . . . dxndt = 테라폴리스
α
x1 = 물질/자연, x2 = 수용/능력, x3 = sociality, x4 = 물질성, xn = 곧-도래할-차원들
α (알파) =
생태
진화
발달 생물학의 다종 후성설
Ω (오메가) = 테라의 다원우주 회복
t = 컨테이너 속 시간이 아닌, 과거/현재/곧-도래할 시간이 얽힌, 세계를 짓는 시간
테라폴리스는 사변적 우화, 가공된 적분방정식이다.
테라폴리스는 다종 더불어-되기(becoming-with)를 위한 n차원 틈새 공간이다.
테라폴리스는 열려있고, 세계적(worldly)이며, 가늠할 수 없고 또한 다양한 시간적 차원을 갖는다.
테라폴리스는 물질, 언어 역사의 키메라다.
테라폴리스는 반려종, 빵을 나누는 이들 (cum panis), 한 상에서 함께 식사하는 이를 위한 것이며, '포스트휴먼(posthuman)'이 아닌 '퇴비-되기/함께-삭기(com-post)'이다.
테라폴리스는 공간이다; 테라폴리스는 예상치 못한 반려를 위해 자리를 내어준다.
테라폴리스는 guman, 썩은 흙, 토양, 그리고 계속되는 위험한 감염, 전염병처럼 퍼지는 밝은 트러블, 영속농업(permaculture)을 위한 것이다.
테라폴리스는 응답-능력(response-ability)을 요구하는 SF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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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종은 테라포밍이라는 오래된 기술과 함께해 왔다. 반려종은 테라폴리스를 묘사하는 SF공식의 참여자(player)이다. 칸트가 말하는 세계화하는 세계정치와 하이데거의 울적한 인간중심적 세계관으로부터 완전히 손을 뗀 테라폴리스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작은 뿌리와 그 주변 공생생물로 이루어진 곰팡이 뿌리를 삭혀 만들어진 잡종 단어다. 테라폴리스의 세계는 절대 궁핍하지 않다. 테라폴리스는 하이데거와 하이데거의 추종자들이 구상한 실존적이고 유고 없는 간극이 아니라 항상-너무-많은 관계가 얽힌 SF그물망 속에 존재하고, 이 속에서 응답-능력은 반드시 서로 꿰어 맞춰져 있어야 한다. 테라폴리스의 세계는 풍부하다, 포스트휴머니즘을 예방하도록 접종을 받았으나, 퇴비(함께-삭기)는 넘친다, 인간우월주의 예방접종을 받았지만 다종 스토리텔링을 위해 무르익은 부엽토(humus)가 가득하다. 테라폴리스는 끝없이 우화적이고, 발기하고 쪼그라드는, 인간의 남근 자아상인 호모(Homo)로서의 인간(human)을 위한 집이 아니다. 인도-유럽 어원의 혀 놀림을 거쳐 흙으로 이루어진 노동자이자 흙의 노동자인 구만(guman)으로 변신하는 인간을 위한 집이다.
4 내 SF크리터는 하늘보다는 진흙으로 이루어진 존재지만 테라폴리스에서도 별은 반짝인다. 남성적인 보편항과 이들이 행하는 포용의 정치로부터 탈피한 테라폴리스에서 구만은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젠더와 장르, 만들어지고-있는-존재들, 소중한 타자성으로 가득하다. 언어학과 고대문명을 전공하는 내 학자-친구들은 여기서 말하는 구만이 가능한 모든 젠더와 장르가 뒤섞인 퇴비 아다마/아담(adama/adam)으로, 곤란함과 함께 머무는 집 세계를 만들 능력이 있다고 한다. 이 테라폴리스는 이자벨 스텐저스(Isabelle Stengers)식의 육체적 세계정치와 SF작가의 세계짓기 실천과 친족-만들기(kin-making), 실뜨기, SF 관계를 맺고 있다.
파푸아뉴기니 산악지대에서의 민족지 연구를 바탕으로 『선물의 젠더 (The Gender of the Gift)』를 저술한 영국 사회인류학자 마릴린 스트래선(Marilyn Strathern)은 내게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어떤 아이디어를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가르쳐줬다. 스트래선은 생각 관행(thinking practices) 민족지학자다. 나에게 스트래선은 학술적 방식의 페미니스트 사변적 우화라는 예술을 상징한다. 사안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어떤 물질(matter)을 사용하는지는 중요하다(matters);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는 중요하다; 어떤 매듭이 매듭을 매듭짓는지, 어떤 생각이 생각을 생각하는지, 어떤 설명이 설명을 설명하는지, 어떤 연결이 연결을 연결하는지는 중요하다. 어떤 이야기가 세상을 만드는지, 어떤 세상이 이야기를 만드는지는 중요하다. 스트래선은 가차 없는 돌발성의 위험을 포용하는 것에 대해 썼다; 스트래선은 인류학이 관계의 관계를 연구하고 관계 간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는 지식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인 수학자이자 내 세계짓기 감각에 영향을 주는 과정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North Whitehead)는 1933년 『The Adventures of Ideas』(관념의 모험)을 저술했다. SF는 정확히 이러한 모험으로 가득하다. 화학자, 화이트헤드학자이자 들뢰즈 학자, 과학의 물성에 관한 급진적 사상가이자 거침없는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이사벨 스텐저스(Isabelle Stengers)는 나에게 풍부한 '사변적 사고'를 준다. 이사벨 스탠저스와 함께라면 우리는 이상 세계의 이름으로 세계를 배격할 수 없다. 스탠저스는 페미니스트 공동체주의적 아나키즘과 화이트헤드 철학 학풍의 정신을 바탕으로 주장한다; 결정은 어떤 식으로든 그 결정의 결과를 감당할 존재들의 참석 하에 내려져야 한다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스탠저스의 세계정치다.
전달하고 전해 받으며, SF는 내 저술과 연구에서 사변적 우화와 실뜨기 모양으로 변한다. 이어 받기, 실뜨기, 앞뒤로 모양을 주고받기, 주고 또 전해받기, 모양잡기(patterning), 청하지 않았던 모양을 손에 유지하기, 응답-능력.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진지한 다종 세계에서 곤란함과 함께 머문다는 것의 핵심이다. 되기가 아니라 함께-되기가 이 놀이의 핵심이다. 뱅시안 데스프레(Vinciane Despret)의 말로 하면, 바로 더불어-되기가 파트너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5 존재적으로 이질적인 파트너는 관계적 물질적-기호적 세계짓기 속에서 자기 자신이 된다. 자연, 문화, 주체와 객체는 얽힌 세계짓기에 선재하지 않는다.
반려종은 가차 없이 더불어-되기다. 반려종이라는 분류는 내가 포스트휴머니즘을 들먹이지 않고도 인간우월주의를 거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반려종은 내부 작용과 상호 작용 속에서 누가/누구들이 세계가 되는지/세계에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실뜨기 놀이를 한다.
6 파트너는 매듭에 선행하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종은 세계의 주체와 객체를 만드는 얽힘의 결과이다. 인간-동물의 세계에서, 반려종은 집, 실험실, 동물원, 공원, 트럭, 사무실, 감옥, 목장, 무대, 마을, 인간 병원, 숲, 도살장, 하구(河口), 동물병원, 호수, 경기장, 헛간, 야생동물 보호구역, 농장, 바다 협곡, 도시 거리, 공장 등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존재다.
비록 인류의 가장 오랜 놀이 중 하나지만, 모든 지역의 실뜨기가 같은 것은 아니다. 모든 식민지 역사와 제국주의 역사의 후손이 그러하듯, 나는 — 우리는 — 보편적이고 특수한 연결이 아닌 부분적 연결로 세계를 합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유럽인 및 유럽계 미국인 민족지 학자들은 전 세계의 실뜨기 게임을 수집했고; 분과를 만드는 여행자인 민족지 학자들은 놀랐다. 이 민족지 학자들이 어릴 적 집에서 배운 실뜨기를 현지인에게 보여주자, 이 현지인들은 이미 그 실뜨기 놀이를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더 다양한 종류를 알고 있었다. 실뜨기는 유럽에 뒤늦게 전해졌고, 아마 아시아 무역로를 통해 왔을 것이다. 이 시기 비교인류학의 모든 인식론적 욕망과 설화는 유사성과 차이성에 의해 점화되었다. 논증 불가능하게 독립적인 발명 또는 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이 욕망과 설화는 실뜨기를 '원주민의' 그리고 '서구의' 실뜨기 놀이로 정형화하여 주고받으면서 뇌와 손, 만들기와 생각하기의 실로 한데 얽혔다.
7 비교로 인한 긴장감 속에서, 실뜨기 모양은 똑같으면서도 완전히 달랐다; SF는 아직 세계짓기와 스토리화하기의 위험한 게임이다. 바로 곤란함과 함께 머무는 것이다.
그림 1.2는 Ma'ii Ats'áá' Yílwoí(엇갈려 달리는 코요테)라는 나바호 실뜨기 모양을 배우고 있는 과학 작가이자 자연사 라디오 프로듀서 러스틴 호그니스(Rusten Hogness)의 손이다. 코요테는 불의 신이 만든 정갈한 별 문양에 끊임없이 먼지에 휩싸인 훼방을 놓는 트릭스터(사기꾼)이다. 코요테는 테란 크리터들의 삶을 빚어내는 질서정연하고 무질서하며 순진하지 않은 퍼포먼스를 설계한다. 나바호 말로 실뜨기는 na'atl'o'이다. 나바호 실뜨기 놀이는 나바호-츄로 양과 그 양들로부터, 또 양과 함께 삶을 이어왔고 또 이어가고 있는 남자들과 여자들에 관한 나의 다종 스토리텔링에 재등장한다. 하지만 이 놀이들은 이 장에서도, 로스앤젤레스와 그 너머의 비둘기를 생각하기 위해 필요하다. 캣츠 크레이들과 쥬데피셀로는 모자라다. 테라폴리스에서 매듭들은 여러 갈래로, 또 여러 접합부위와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뻗어야나가야한다. 나바호 실뜨기 놀이는 '연속적-엮기'로서,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 사람, 바로디네(diné)의 등장에 관해 이야기하는 실천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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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뜨기 모양은 교육학적 실천이자 우주론적 퍼포먼스이며, 만들기 실천이기도 하지만 생각하기 실천이기도 하다. 어떤 나바호 사상가는 실뜨기를 호조(hózhó)를 회복하는 일종의 모양잡기라고 설명한다. 호조란 불완전하게나마 '조화', '아름다움', '질서', 그리고 '세상의 건전한 관계'라고 번역할 수 있다. 세상 속(in)이 아니라 세상의(of) 관계이다. 이 영어 전치사 간 핵심적인 차이가 나로 하여금 나바호 실뜨기 모양, na'atl'o'를 SF세계짓기의 그물망 속으로 엮어내게 한다. SF세계는 컨테이너가 아니다. SF세계들은 모양(잡기)들이고, 아슬아슬한 함께-만들기(co-makings)이며, 사변적 우화이다. 테라폴리스상의 SF에서 치유와 호조는 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위해 어떤 아이디어를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캣츠크레이들을 na'atl'o'로 생각하고 만드는 것은 순진무구한 보편적인 제스처가 아니라 가차 없고 역사적인 관계적 우연성 속에서 감행하는 위험한 제안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연은 정복, 저항, 치유, 그리고 재기에 관한 풍부한 역사를 포함한다. 역사적 상황에 뿌리를 둔 크리터들과 함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보다 살만한 세계정치를 구성하는 위험과 기쁨으로 가득하다.
내 첫 길잡이는 바로 비둘기다. 테라폴리스의 시민인 비둘기는 무수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갈 수 있고 또 살아가는 기회주의적인 사회적 종의 구성원이다. 비둘기는 매우 다양하며, 여러 언어의 여러 범주에 속한다. 영어는 야생 세계와 사육 세계로 분류하지만, 이러한 구체적인 반대항은 소위 말하는 서구에서조차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 비둘기의 각자 다르고 또 증식하는 특이성은 놀랍다. 그곳 사람들과 함께 길들여지는 이 비-인간-크리터는 나에게 중요한 문제를 양성한다. 비둘기는 인간과 더불어-되어온 오랜 역사가 있다. 이 새는 자신의 사람들을 계급, 젠더, 인종, 국적, 식민지, 탈식민지, 그리고 — 어쩌면 — 회복 중인, 곧-도래할 테라로 매듭짓는다.
나아가 비둘기는 '제국의 짐승'이기도 하다. 즉, 비둘기는 유럽인 식민지 주민과 유럽인 정복자와 함께, 다른 종류의 비둘기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던 곳을 포함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툼의 대상이 되는 영토와 다종 육체에 아직까지도 영향을 끼치는 방향으로 모두의 생태와 정치를 변화시켰다. 비둘기가 항상 식민지 주민인 것은 절대아니다. 비둘기는 여러 지역마다 고유한 종류와 품종에,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살기와 죽기의 배열에 속한다. 수천 년 동안 자연적문화적 경제를 형성하고 삶을 일궈온 이 크리터들은 생태에 끼치는 악영향과 생물사회에 가져오는 격동으로도 악명이 높다. 비둘기는 소중한 친족이자 멸시당하는 유해동물이며, 구조 대상이자 욕설의 대상이며, 권리를 향유하는 존재이자 동물-기계의 부속품이다. 음식이자 이웃이고, 일과 놀이의 동반자이자 질병의 매개체이고, '근대적 진보'과 '낙후된 전통'이 경합하는 주체이자 객체이다. 이 모두를 떠나서, 비둘기의 종류는 다양하고, 또 다양하고, 거기서 좀 더 다양해서, 테라의 모든 자리마다 고유한 비둘기 종이 있다.
수천 년동안 사람과 더불어-되며, 사육 비둘기(Columba livia domestica)는 서유럽과 남유럽, 북아프리카, 그리고 서아시아와 남아시아의 토착 새로부터 유래한다. 양(洋) 비둘기(rock doves)는 1606년 유럽인과 함께 노바스코샤 포트로얄(Port Royal)을 통해 북아메리카로 들어왔다. 어딜 가든, 이 세계정치적(cosmopolitical)인 비둘기는 열정적으로 도시를 차지하여 화려하게 인간의 사랑과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야생 비둘기는 '날개 달린 쥐'로 불리며, 절멸과 욕설의 대상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비둘기는 소중한 기회주의적 동반자로,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서 야생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고 야생 비둘기를 열렬하게 구경한다. 사육 양 비둘기는 메시지를 전하는 스파이로, 경주 비둘기로, 심리학 실험 대상으로, 인공선택의 힘을 이야기한 다윈의 대변인 등으로 일 해왔다. 야생 비둘기는 도시의 맹금류가 제일 좋아하는 먹이다. 맹금은 송골매와 함께 새의 알 껍질을 얇게 만들어 부화율을 낮추는 DDT의 여파로 인한 멸종 위기 겪었다가 회복한 이후, 도시의 다리와 고층빌딩 선반 위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비둘기는 — 사절단으로서도 그리고 연기자로서도 — 두 측면 모두에서 유능한 요원으로, 서로에게, 그리고 인간 존재에게 상황에 따른 사회적, 생태적, 행동적, 그리고 인지적 실천 능력을 부여한다. 비둘기의 세계짓기는 광범위하다. 이 장에서 이야기하는 SF놀이는 이 새들이 지은 매듭과 이 새들과 함께 매듭지어진 실의 전부는커녕 대부분을 스치지 못한다.
9 내 SF놀이는 치유를 위한 겸손하고 대담한, 동시대적이고 위험천만한 프로젝트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이 몇 개 프로젝트에서 사람과 동물은 혁신적인 방법으로 함께 얽히고, 이는 아주 겨우, 서로 간 — 지금 혹은 곧 도래할 — 유한한 번창을 가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과 사람 간 협력은 사람과 동물 간 협력만큼이나 중요하고, 또 그에 의해 가능해진다. 비둘기의 날갯짓은 우리를 일반적인 협력이 아닌, 익숙한 세계에서 불편하고 낯선 세계로 넘어가는 구체적인 교차지점으로 인도하여 무엇인가 엮어낸다. 이 매듭은 풀려버릴 수도 있지만, 테라폴리스의 n차원 틈새 공간 속에서 아름답게 살기와 아름답게 죽기를 양성해낼 수도 있다. 나는 이 매듭들이 계속되는 곤란함 속에서도 다종 응답-능력을 위한 희망찬 모양을 제시하길 바란다.
캘리포니아 경주 비둘기와 사람들 :
세계적 번창을 위한 협력하는(협력의) 예술
더불어 되기; 유능-해지기(rendering-capable)
비둘기의 능력은 인간을 놀라게 하고 또 인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인간은 종종 자신도 다른 물체, 그리고 살아있는 존재와 함께 또 그에 의해 유능-해져왔다는 사실을 깜빡한다. 응답-능력을 형성하는 물체와 살아있는 존재들은 다양한 척도의 시간과 공간에서, 인간과 비인간 몸 안팎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이 행위자들은 다함께 무엇이 그리고 누가 존재하는지를 환기하고, 촉발하고, 불러낸다. 더불어-되기와 유능-해지기는 함께 n차원 틈새 공간과 그 공간의 주민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물은 종종 자연이라고 불린다. 이 공동생산된(co-produced) 감각 속 비둘기의 습성은 내 SF이야기에서 중요하다.
비둘기는 집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곳에서 풀어줘도 집을 찾아올 수 있다. 심지어는 흐린 날에도 말이다.
10 비둘기의 길 찾기 능력과 방향 감각은 비둘기로 경주를 하는 비둘기 애호가, 행동신경생물학적으로 비둘기의 방향 감지 능력을 연구하는 과학자, 적군의 영토를 너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스파이, 그리고 비밀을 실어 날라 줄 비둘기가 필요한 추리 소설 작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1 비둘기 애호가는 거의 항상 남자 혹은 소년이며, 전 세계에서, 특히 카이로, 이스탄불, 그리고 유럽의 베를린같이 무슬림 이민자가 많이 사는 도시의 지붕 위에서 펼쳐지는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비둘기 애호가들은 비둘기가 출발 지점에서부터 빠르고 정확하게 귀소하도록 뛰어난 비둘기를 선택적으로 교배하고 기른다. 평범한 야생 비둘기 또한 훌륭한 귀소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둘기는 익숙한 지형을 인식하여 길을 찾는다. 비둘기는 비행 중 자기 아래 있는 사물과 무리를 탁월하게 인식하고 구별한다. 1970~1980년대 해안 경비대는 비둘기와 함께 해상 구조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비둘기가 사람보다 해면에 떠 있는 사람과 장비를 발견해내는데 뛰어났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 인간의 정확도가 38%라면, 비둘기의 정확도는 93%에 육박했다. 비둘기들은 헬리콥터 아래 관측함에 앉아 무엇인가 발견할 때마다 키를 눌렀다. 비둘기가 고립되어 일하지 않고 사람과 함께 일한 경우 정확도는 100%에 가까웠다. 물론, 비둘기와 해안 경비대는 서로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비둘기들은 함께하는 인간이 무엇을 찾고 싶어 하는 지 배워야 했다. 사람과 비둘기는 교육학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모두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유능하게 만들 방법을 독창적으로 고안해내야 했다. 그러나 1983년 헬리콥터 두 대가 충돌하여 정부의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프로젝트는 중단되었고, 비둘기들이 졸업해서 실제 해상 충돌 사고 피해자 구조를 위해 출동하는 일은 없었다.
동물이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을 알아볼 수 있다고 인간 회의론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비-인간-크리터는 많지 않다. 과학자들은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몸 위 페인트 자국이나 이같은 표식을 쪼아대는 행동을 통해 거울 속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비둘기는 이 능력을, 최소, 두 살 넘은 인간 아동, 히말라야 원숭이, 침팬지, 까치, 돌고래, 코끼리와 공유한다. 서구의 깊은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론과 방법론 측면에서 개인주의에 심취한 심리학과 철학은 소위 말하는 자기인식에 굉장한 무게를 둔다. 이런 자기인식을 누가 할 수 있고 누가 못하는지를 가려내는 실험을 고안하는 일은 일종의 경쟁적 인식론적 스포츠다. 비둘기는 1981년, 스키너의 실험실에서 첫 거울 시험을 통과했다. 사이언스 뉴스는 2008년 게이오 대학 연구진이 거울과 라이브 비디오 이미지를 이용해 진행한 자기 인식 실험에서, 5초에서 7초까지의 지연이 있었음에도 비둘기가 세 살 된 아동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비둘기는 사진 속 여러 사람도 구별할 수 있다. 게이오대학 와타나베 시게루 박사의 비교 인지신경과학 연구실에서, 비둘기는 모네와 피카소의 그림을 분간해내고 이를 일반화해 서로 다른 유파에 속한 다양한 화풍을 가진 화가의 낯선 작품을 구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내 새-뇌 인지능력이 네 유인원-뇌 인지능력과 동등하거나 더 낫다"는 식의 뻔한 주장을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 위 사건들은 그보다 더 흥미롭고, 함께 잘 지내고, 유사성과 차이성 모두에 있어서 서로 배려하기 위한 결과를 가득 담고 있다. 비둘기와 사람과 조직은 다종 관계의 세상에서 서로가 새로운 무언가에 유능해질 수 있도록 함께 뭉쳤다.
특정 상황에서 자기인식이 가능하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도 좋지만, 서로를, 그리고 또 다른 존재를, 이 크리터들이 살아갈 삶의 방식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인지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곳이 경주비둘기장이든 아니면 도시 광장이든 말이다. 과학자들은 이 주제에 대해서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를 하지만, 여기서는 타냐 베로코프(Tanya Berokoff)의 온라인 에세이 「경주 비둘기 포스트 (Racing Pigeon Post)」에 주목하고 싶다. 그녀는 언어의사소통 선생님이자 평생 동안 다른 동물의 반려이며, 주로 다른 남자들과 새들을 경주시키는 남편 존 베로코프와 함께 캘리포니아 팔로마 경주비둘기 클럽 회원이다. 타냐 베로코프는 사회학적 지식과 미국 대중문화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그리고 존 볼비의 애착이론과 티나 터너의 노래 '도대체 사랑과 무슨 상관있지? What's Love Got to Do with it?'의 가사를 활용하여, 비둘기 애호가들이 어떻게 어린 비둘기들이 자기효능감과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면서, 차분하며 자신감 넘치고 또사회적으로 유능한, 믿을만한 전서구(homing pigeon)로 자랄 수 있도록 비둘기 부모를 돕는지에 관해 말한다.
12 베르코프는 비둘기의 사고와 비둘기의 사회적 관습을 이해하기 위해 비둘기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비둘기-사람들(pigeon-people)의 의무를 묘사하는데, 베르코프는 '지식'이라는 단어를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이 사랑은 기능적 사랑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을 뜻한다. 이 행위자는 종-내 그리고 종간 관계를 맺는 비둘기와 사람이다. 베르코프는 비둘기간 자세와 몸짓, 비둘기끼리 보내는 시간과 비둘기가 무엇을 하며 그 시간을 보내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베르코프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비둘기는 서로간 일종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잘 표현한다...우리 비둘기는 사실 진짜 서로를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타르코프에게 '사랑하는 일'은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하는 감정적 욕구가 아니라, 진정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을 의미한다. 타르코프는 비둘기들은 자신의 사회적 파트너 비둘기의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보이며, 사람 또한 비둘기에게 마찬가지를 해 줄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베르코프는 볼비의 애착이론을 상세히 다루며 어린 비둘기의 성장과정에서의 욕구를 설명한다. 이 어린비둘기들의 파트너는 다른 비둘기이기도 하고, 비둘기와의 응답-능력이 있는 인간이기도 하다. 베르코프가 그리는 비둘기의 모습이 장밋빛이지만은 않다. 비둘기간 왕따, 비둘기에게도 인간에게도 고된 경주, 관심과 사랑을 두고 벌이는 경쟁 — 그리고 비둘기 요리법 — 이 모든 것이 베르코프의 글에 들어있다. 나는 이 담론이나 이 스포츠가 무해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이 광경이 굉장히 복잡한 관계성과 활기찬 다종 SF실천을 담아낸다는 것이 내 요점이다.
피죤블로그 (PigeonBlog)
회복과 곤란함이 함께 머물기는 내 SF실천의 테마다. 이 질문들을, 비둘기를 향한 인간의 잔혹함이나, 비둘기가 다른 종이나 인간의 건축물에 끼치는 해악을 이야기하며 다루기는 너무 쉽다. 나는 그보다, 주로 인종과 계급에 따라 다르게 지워지는 도시 공기 오염의 불공평한 부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도시 공기 오염은 인간간의 수명과 질병발생률의 차이에 기여한다. (비-인간 존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영향은 측정되지 않고 있다). 황폐한 동네와 사회적 관계 모두를 고치고자 노력하는 캘리포니아 환경정의실현 프로젝트의 다음 동반자는 일꾼 비둘기이다. 우리는 예술액티비즘 프로젝트인 피죤블로그의 세포조직 속에서 곤란함과 함께 머물 것이다. 피죤블로그는 예술가이자 연구자인 비트리즈 다 코스타(Beatriz da Costa)와 다 코스타의 학생인 시나 하젝(Cina Hazegh)와 케빈 폰토(Kevin Ponto)가 진행한 프로젝트로, 여러 인간, 동물, 그리고 사이보그 공동생산자와 함께 SF패턴들을 엮었다.
2006년 8월, 경주비둘기는 도시 사람과 도시 경주 비둘기를 통신기술과 긴밀히 합친 세 가지 공공 사회 실험에 참여하여 날았다. 한 번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의 실험적 비평 이론 세미나의 일환으로 날았고, 두 번째는 산호세 캘리포니아에서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의 '7일간의 예술과 상호연결 축제'를 위해 날았다. 피죤블로그는 전서구, 예술가, 엔지니어, 그리고 비둘기 애호가의 광범위한 협력을 요구했다. 이는 일반 대기질 상태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이를 일반 대중과 나누기 위하여 고안된 풀뿌리 과학 데이터 수집 계획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경주 비둘기가 남성적인 경쟁 스포츠와 깊은 종 간 애정을 연결고리로 노동자 계급 사람과 맺은 연대는 낯설지 않으며, 안보, 통신 기술, 네트워크 분야에 있어서 경주비둘기의 능력은 역사적으로 유구하고 또 중요하다. 이 경주비둘기는 수 십 년동안 조류학 연구실과 심리학 연구실에서 일꾼이자 주체였다. 피죤블로그는 처음으로 경주 전서구가 이 모든 유산에 예술액티비스트라는 새로운 유형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참여하도록 초대했다. 프로젝트는 '저항 행동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중과학에 기반한 저렴한 최첨단 DIY 전자기기와 종 상호간 공동생산한 예술과 지식을 결합하고자 했다. 데이터는 자극하고, 원동력이 되고, 증폭하고, 영감을 주고, 선보이기 위한 목적으로 수집되었지, 대기오염에 관한 전문 과학과 모니터링을 대체하거나 능가하기 위해 수집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여러 실천 영역에서의 창의적이고 지식에 기반을 둔 행동을 창출하기 위해 생산된 데이터였던 것이다. 다 코스타는 대기오염 과학자가 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색다른 협동에 불을 붙이기 위해 나선 것이다: 결정적 차이를 가로지르는 회복을 필요로 하고 — 또 치유할 능력이 있는 — 지루한 세계를 위한, 행동하는 다종 예술을 위해서.
캘리포니아 남부의 대기오염은 전설적이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주는 더욱 그렇다. 대기 오염은 특히 고속도로, 발전소, 정제공장 근처의 사람과 다른 크리터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시설은 주로 — 주로 교차하는 범주인 — 노동계급, 유색인종, 이민자가 사는 동네 안에 혹은 그 주변에 집적되어 있다. 남부 캘리포니아 정부의 공식 대기 오염 측정 장치는 교통량이 많은 지역으로부터, 그리고 알려진 오염 진원지로부터 떨어진 장소에, 그리고 사람과 다른 많은 식물 및 동물이 호흡하는 고도보다 더 높은 지점에 설치되어 있다. 각 장치는 수 천 달러를 호가하고 기기 바로 인근의 가스만 측정할 수 있으며, 여러 모델에 의존하여 이 결과를 대기질 관리구역(air basin) 공기의 전체로 일반화한다. 장비를 제대로 갖춘 경주 비둘기는 출발지의 공기를 포함하여, 정부 기기가 접근하지 못하는 주요 고도를 비행하며 연속적으로 실시간 대기 오염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 데이터를 인터넷을 통해 대중에게 실시간 중계할 수도 있다. 이런 새와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협력을 모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또, 이런 협력은 어떤 모습의 보살핌과 응답-능력을 촉발할까?
다 코스타는 장비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개발한 비둘기 '배낭'은 GPS (위도, 경도, 고도)와 GSM(이동전화 통신)이 결합된 유닛과 안테나 한 쌍, 일산화탄소/산화질소(CO/NOx)오염을 측정하는 차량용 듀얼 센서, 온도계, SIM카드 인터페이스, 미세제어장치와 일반적인 전자기기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이런 디자인으로 우리는 오픈-플랫폼 SMS 기능을 가진 휴대전화를 개발했고 관심 있는 누구나 따라 제작하고 또 구성을 변경해서 만들 수 있었다. 연구자-예술가-엔지니어들은 기본 기술을 설계하는 데는 3개월 정도가 걸렸지만, 배낭이 비둘기에게 알맞도록 작고, 편하고 그리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약 1년간 직접 다종 신뢰를 형성하고, 새와 사람과 기술을 한데 모으기 위해 꼭 필요한 지식을 쌓아야 했다. 프로젝트 구성원이 아닌 기회주의적 매가 한가득 짐을 싣고 돌아오는 비둘기를 공중에서 낚아채는 일이 벌어지는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최소한 자신의 경주 비둘기를 사육하고, 기르고, 길들이고, 사랑한 남자 중에서, 새들이 억지로, 불안하고 불행하게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용인할 이는 없었다. 새들에게 자신감과 능력을 발휘해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예술가-연구자들과 비둘기 애호가들은 서로를 상호신뢰 능력을 가진 유능한 존재로 만들어내야 했다. 즉, 이들은 수많은 피팅 세션과 비둘기장(loft)에서의 균형 잡기 훈련을 해야 했으며, 중학교 학용품 가게 주인, 과학 교사이자 관대하고 풍부한 지식을 가진 비둘기 애호가 밥 마츠야마(Bob Matsuyama)와 마츠야마의 훈련된 비행사들과 함께 배우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이 비둘기들은 SIM카드가 아니라 살아있는 공동생산자였고, 예술가-연구자들과 비둘기들은 비둘기 애호가 남성들의 지도하에 교류하고 함께 훈련하는 법을 배워야했다. 모든 참가자는 서로를 유능하게 만들었다; 참가자들은 사변적 우화 속에서 함께 "더불어-된다". 여러 시행과 실험 비행 끝에, 드디어 이 다종 팀은 공중에 실뜨기 패턴과 전자 발자국을 남길 준비가 되었다.
13
2006년 퍼포먼스와 피죤블로그 웹사이트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있었고 여러 언론에서도 이들을 다뤘다이. 다 코스타는 텍사스에 사는 한 엔지니어가 조류의 공기역학을 응용한 소형 자동 공중 보안 기기의 설계 및 개발을 위해 함께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회국에 연구 제안서를 제출해보지 않겠냐며 제안해왔다고 한다. 농담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오랜 역사가 있는 비-인간 동물의 무기화와 스파이 체계로의 군사적 이용은 21세기를 들어 더 화려해졌고 기술적으로 발달해왔다.
14 같은 맥락에서, 동물의 윤리적인 대우를 위하는 사람들의 모임(PETA)은 동물학대를 이유로 피죤블로그를 폐쇄하려고 했다. PETA는 다 코스타가 소속된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의 행정실에게 조취를 취하라며 공개 성명을 냈다. PETA가 제시한 이유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피죤블로그가 비인간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피죤블로그가 과학에 기반한 실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령 피죤블로그가 과학적인 실험이었다 해도 PETA는 반대했을 수 있지만, 그 경우 최소한 목적론적이고 기능적인 이유(질병 치료, 게놈 지도 연구)는 있기에 반대가 덜했을 것이다. 권리 주체의 확장과 과학의 진보라는 진지한 의제에 비할 때 예술은 하찮으며 그저 놀이에 불과했다. 다 코스타는 세계정치와 예술, 정치 또는 과학에서 동물과의 협동 작업에 관한 물질적-기호학적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어떤 존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누가, 무엇을 대가로 결정하며 그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다 코스타가 질문했다: 그러나, "정치적 [그리고 예술적] 행동의 일환으로서 인간-동물의 일은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진 같은 종류의 활동보다 정당성이 떨어지는가?" 어쩌면, 목적론적 명령이나 확립된 분류나 기능을 벗어난, 바로 놀이의 영역에서 진지한 세상성(worldliness)과 회복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분명히 이것이 SF의 전제다.
비둘기 경주를 하는 남자들은 경쟁 스포츠 속 비둘기와 함께-되는 일을 포함한 여러 조직적인 일/놀이를 하는 인간-동물 관계에 관해 동물권운동의 (전체가 아닌) 일부가 불러오는 논란과 공격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PETA가 다 코스타의 예술 연구에 주목하기 한참 전에도, 피죤블로그는 시작하기도 전에 중단될 뻔 했다.
15 다 코스타는 프로젝트 초기에 비둘기 애호가들을 만나 비둘기와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할 생각이 없는지 묻기 위해 미국 경주비둘기연합에 연락했다. 처음 연락했던 사람은 관심을 보였지만 노골적으로 동물권 사람들과 그들의 전략을 두려워했다. 그 사람은 다 코스타를 밥 마츠야마와 연결해줬고, 마츠야마는 프로젝트에 폭넓게 참여하며 예술 연구자들이 산호세에 있는 비둘기 애호가들과 만날 수 있게 해주며 그가 얻은 신뢰를 이들에게 중개해주었다. 피죤블로그를 마무리했을 때, 미국 경주비둘기연합은 코스타가 새를 위해 한 일과 더 많은 대중에게 경주 비둘기의 업적과 능력을 알리는 데 이바지하였음을 이유로 다 코스타에게 공식 감사장을 수여했다.
피죤블로그는 팬이 많고, 그중에는 녹색 친환경 운동가도 있지만, 유독 한 반응이 다 코스타로 하여금 캘리포니아의 경주 비둘기들이 훌륭하게 날아 종간 세계에서 희망적인 무엇인가를 열었다고 느끼게 했다. 코넬대학교 조류학 실험실이 다 코스타에게 대학교 시민 과학 계획의 일환인 '도시 새 정원'의 위원회 구성원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나이 든 보행자부터 등교하는 아이를 아우르는 보통사람이 수집한 데이터가 대학 연구와 시민의 애정과 궁금증을 한데 모으는 데이터베이스의 일부가 될 수 있었고, 실제로 되었다. 이와 깊은 관련이 있는 코넬대학교가 함께한 피죤워치는 야생 비둘기의 상이한 모집단 간 색상 종류가 지역별로 어떻게 다른지를 조사하기 위한 시민 과학 계획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중 일부는 워싱턴DC에서 도시 학교 단체의 자원을 받아 도시의 비둘기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특히 '소수자' 집단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도시 아이들은, 멸시 받고 살아가는 새들을 주목할 가치가 있는 소중하고 흥미로운 도시 거주민으로 보는 법을 배운다. 그 아이들과 새들 중 누구 하나도 도시의 '야생생물'은 아니다. 둘 다 상호작용하는 시민주체이자 객체이다. 하지만 이 비둘기와 DC의 흑인 아이들 둘 다 난폭하고, 더럽고, 거북하며, 야생적이라는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도상학적 낙인을 이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고 또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실제 아이들은 '날개 달린 쥐'로 보던 비둘기를 삶과 죽음이 있는 사회적인 새로 보게 된다. 아이들은 비둘기를 괴롭히는 사람이자 어떤 경우 신체학대범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존중해야할지 몰랐던 이 존재의 기민한 관찰자이자 지지자로 변해갔다. 이 어린 학교아이들은 응답-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쩌면 오랜 시간동안 사람과 정서적이고 인지적인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비둘기들 또한 아이들을 되돌아봤을지도 모르고, 비둘기들은 이번에 적어도 괴롭힘은 당하지 않았다. 이 경험담은 하나의 이야기이며, 성취인 만큼 초대장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도시를 살아가는 멸시당하는 종 상호 간 치유의 공간은 닫힐 것이 아니라 더 넓어져야 마땅하다.
뱅시안 데스프레(Vinciane Despret)은 전서구와 그 비둘기의 사람들 둘 다를 육성하는 비둘기 애호가 공동체가 소멸될 위기 앞에서 그 두 존재를 한데 모으는 또 하나의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데스프레는 예술가 마탈리 크라세(Matali Crasset)가 2003년 프랑스 쇼드히에서 디자인한 비둘기장이 무엇을 기념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비둘기 애호가(fanciers)의 비둘기 사랑 없이는, 사람과 새의 지식과 노하우 없이는, 비둘기를 선발하고 양성하지 않고는, 관행을 전하지 않고는, 비둘기는 전서구도 뱃사공이 아닌 그저 비둘기로 남는다. 그렇다면 기념하는 것은, 동물 그 자체나 관행 그 자체가 아닌 명시적으로 프로젝트의 시발점으로 새겨진 두 '더불어-되기'의 활성화이다. 다르게 말하면, 존재하게 된 것은 비둘기가 사람을 재능 있는 비둘기 애호가로 바꾸고, 애호가들이 비둘기를 믿음직한 경주 비둘기로 바꿔놓는 관계들이다. 이것이 바로 이 작업이 기념하는 방식이다. 이 작업은 이러한 업적을 현재로 끌어올 수 있도록 기억을 조각하는 것을 임무로 삼는다. 일종의 반복이다.
기억하기(Re-member, 다시-구성원이 되기), 기념하기(com-memorate, 함께-기억하기)는 적극적으로 반복하기, 되살아나기, 되찾기이다. 다종, SF, 더불어-되기의 실뜨기 세계짓기에 헌신하는 다 코스타와 데스프레는 반려종이다. 다 코스타와 데스프레는 기억한다. 이들은 파트너 사이 적극적 호혜 없이는 사라질 무언가를 육체적 현재 속으로 유인하고 또 연장한다. 귀소하거나 경주하는 비둘기와 야생 비둘기는 새로운 사람과 전통적 사람 모두에게 응답-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사람 또한 비둘기에게 마찬가지를 요구한다. 도시와 농촌에서 다양한 방식의 살기와 죽기를 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종은 서로를 믿음직한 뱃사공(voyageurs fiables)과 함께하는 재능 있는 비둘기 애호가(colombophiles talenteuex)로 만든다.
데스프레와 다 코스타는 마탈리 크라세와 함께 실뜨기를 하고 있다. 매듭과 더불어 테라폴리스에서의 가능성을 주고받는다. 크라세는 산업 디자이너이다. 산업 디자이너는 순수 예술가와 달리 파트너와 협업하고 파트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다 코스타 또한 예술가 연구자이자 다종 예술 활동가로서의 자기 작업에서 이러한 실천을 한다. 크라세는 보부아 앙 캄브리스(Beauvois-en-Cambrésis)의 비둘기 애호가 연합인 라데팡스(la Défense)와 카드리 공원의 의뢰를 받고 비둘기장을 기획했다. 캡슐의 내부공간은 기능적으로 나무처럼, 마치 세상의 중심축처럼 설계되어 있고, 외부는 이집트의 옛 비둘기장 디자인을 본 따서 만들었다. 비둘기를 사육하고, 기르고, 날리고 또 비둘기와 더불어-되는 이들이 의뢰한 이 집에서는 역사, 신화 그리고 물질세계가 상호작용한다.
또 하나의 탑 형태의 비둘기장이 내 기억 속에 드리운다. 제국 짐승의 다종 치유를 위해, 종을 가리지 않고, 뻗은 손을 붙잡을지 모르는 모든 존재에게 또 하나의 제안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번에 우리는 호주 멜버른, 야라강 연안 배트맨 공원에 와 있다. 이곳은 유럽인이 정착하기 이전에 우룬제리(Wurundjeri) 사람들의 땅이었다. 야라 강을 따라 식민화된 이 지역은 황무지, 하수폐기장, 화물과 철도 교통지가 되었고, 이로 인해 습지(앵글로-과학적 단어)와 고장(country, 이야기가 담긴 다차원적 장소를 뜻하는 앵글로-원주민 단어)은 파괴되었다. 곤란함과 함께 머무는 데 있어 습지와 고장은
캣츠 크레이들, 쥬데피셀, na'atl'o'와 matjka-wuma만큼이나 비슷하고 또 다르다. 이들의 이름과 모양은 서로에게 중요하지만, 이들은 동형적이지 않다.
16 이들은 연결되고 한편으로는 갈라져 있으며 뒤엉킨 역사 속에 산다.
배트맨 공원은 버려진 화물 열차 역을 따라 1982년에 지어졌고, 비둘기장은 비둘기가 도시 빌딩과 거리로부터 떨어져 지내도록 장려하기 위해 1990년대에 지어졌다. 이 비둘기장은 도시 측의 야생 비둘기 관리계획의 일환으로 건축된 탑 구조물이다. 이 비둘기는 비둘기 애호가나 훈련사(colombophile)의 사랑받는 경주 비둘기가 아니라, 우리가 방금 몇 문단 전 워싱턴DC에서, 국제적으로 저명한 코넬대학교 조류학 연구실과 연결된 도시공원프로그램에서 만났던 도시의 '하늘의 쥐'로서 비둘기다. 멜버른의 비둘기는 유럽인과 함께 왔다. 야라강 습지를 대체하고, 고장을 돌볼 의무를 가진 원주민 전통 토지 주인 대부분을 몰아낸 생태계와 세계에서 비둘기는 번창했다. 1985년, 우룬제리족 토지보상 및 문화유산 위원회가 창립됐는데, 그 창립 목적 중 하나는 현대 호주에서 우룬제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의식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나는 이 위원회가 배트맨 공원이 자리한 땅의 부분적 치유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야라강 연안이 우룬제리 족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지역이었다는 사실이다. 1835년 사업가이자 탐험가였던 존 배트맨은 토지를 사들이기 위해 우룬제리 원로들과 문서 계약을 맺었다. 유럽인이 "원주민 땅에서의 주둔과 땅의 점령을 그 전통적인 땅 주인과 직접 협상했던" 처음이자 유일하게 기록된 사례이다. "존 배트맨은 현재 멜버른 교외 땅 대부분을 포함하는 600,000에이커에 해당하는 땅에 대한 대가로 모포 40장, 도끼 42자루, 칼 130자루, 가위 62개, 거울 40개, 손수건 250장, 셔츠 18장, 플란넬 자켓 4벌, 옷 4벌과 밀가루 150 파운드를 지불했다."
17 뉴사우스웨일즈의 영국 총독은 여왕의 권한을 침범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 무례한 조약의 효력을 부인했다. 되찾은 도시 땅으로 이루어진 작은 강변 공원과 공원의 인상적인 비둘기장과 함께 이 다난한 역사는 어떻게든 상속되고 리-멤버(기억하기, 다시-멤버되기)되어야 한다.
배트맨공원의 비둘기장은 시민과학을 위한 예술 연구나 비둘기경주 공동체가 의뢰한 산업예술 작품이 아니라, 산아제한의 — 혹은 더 적절하게 표현하면, 부화제한의 — 일환으로, 이는 도시의 다종 번창을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다. 야생비둘기의 생산력은 그자체로 물리적이고 도시적인 힘으로, 땅이 정착민과 이민자로 인해 포화상태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강력한 기표로 작동하면서 또 한편으로 습지의 고유한 새와 원주민의 땅을 약탈한다. 곤란함과 함께 머물면서, 주어진 임무는 다종 치유이자, 호주 속담이 암시하듯, 어떻게든 덜 부정하고 더 실험적인 정의를 실천하며, "함께 잘 지내기"이다. 나는 이 비둘기장이 하나의 작고, 실용적인 실연(實演)이자 곤란함과 함께 머무는 응답-능력을 향해 더욱 열려있도록 상기해준다고 보고 싶다. 응답-능력은 부재와 현존, 살해하기와 육성하기, 살기와 죽기, 그리고 이 자연적문화적 역사의 실뜨기 모양 속에서 어떻게, 그리고 누가 살고 죽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비둘기장에 있는 둥지상자 200개는 와서 알을 낳으라고 비둘기를 초대한다. 사람들은 하단부를 통해 비둘기 알을 비둘기가 품을 수 있는 인공 알로 바꾸어 놓는다. 사람들이 비둘기장 근처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허용되고 — 나아가 장려되지만 — 다른 장소에서는 먹이를 줄 수 없다. "영속농업, 교육 그리고 먹거리를 키우는 프로젝트"에 관해 글을 쓰는 블로그인 피치포크(Pitchfork)는 배트맨공원의 비둘기장에 주목했다 비둘기장이 비둘기-인간 사이 갈등에 혁신적인 방법으로 대응했을 뿐만 아니라, 한 장소에 새를 모아 비옥한 생산물,즉, 퇴비로 쓸 수 있는 배설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블로거는 "비둘기 거름을 식량생산체계에 들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직접 비둘기가 날아오도록 하는 것"이라고 썼다. 얼마 전까지 하수폐기장이었던 공원에서, 영속농업 세계에서 나온 이런 제안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 비둘기장은 생명옹호(pro-life, 낙태반대) 프로젝트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생명옹호라는 말이 가지는 미국에서 가지는 차가운 맥락에서 그 어떤 진지한 동물-인간간 더불어-되기도 생명옹호 프로젝트일 수 없다. 그리고 물론 이 시립 비둘기장은 불공평한 조약도, 정복도 그리고 습지 파괴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순진무구하지 않으며 의문을 제기하는 지속적인 다종 함께-잘-지내기를 위한 무늬를 이루는 실 한 가닥일 수 있다.
믿음직한 여행자들
반려종은 늘 서로를 감염시킨다. 비둘기는 세계 여행자고, 이런 세계 여행자는 병원체로서 좋든 나쁘든 더 많은 것을 옮기고 다닌다. 육체에 관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의무는 전염성이 있거나, 있어야 한다. 쿰 파니스, 한상에서 식사하는 반려종. 결론은 없고 단지 서두만 있다면 왜 내 비둘기 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할까?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 속에서 강화되는 상당히 결정적인 응답-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디테일은 중요하다. 바로 디테일이 실존하는 존재를 실제 응답-능력과 연결한다. 스파이로서, 경주자로서, 메신저로서, 도시 이웃으로서, 무지개빛 성적 노출자로서, 새의 부모로서, 사람들의 젠더 보조자로서, 과학적 주체이자 객체로서, 예술-공학(art-engineering) 환경 리포터로서, 바다 위 탐색 및 구조 일꾼으로서, 제국주의 침략자로서, 화풍(畫風) 식별자로서, 토착종으로서, 애완동물로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지구를 돌며 비둘기와 사람을 포함한 비둘기의 여러 종류의 파트너는 역사를 만들다. 어떤 이야기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무엇인가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줄 때마다, 혹은 나에게 새로운 지식을 소개시켜줄 때마다, 번창에 마음을 쓰는데꼭 필요한 근육이 유산소 운동을 한다. 이런 운동은 집합적 사고와 활동을 더 복잡하게 향상시킨다. 매번 엉킨 실타래를 따라 처음에는 생뚱맞아보였으나 결국 직물에 꼭 필요한 일부라고 밝혀진 실 몇 가닥을 추가할 때마다, 나는 테라폴리스, 테라 위에서 함께 잘 죽고 잘 살기 위한 핵심이 바로 복잡한 세계짓기의 곤란함과 함께 머무는 것이라고 더 거침없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끔찍한 역사 앞에서, 그리고 때로는 즐거운 역사 앞에서 다종 번창을 위한 환경을 조성할 책임을 그러한 환경에 대해 진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같은 방식의 응답-능력(response-able, 책임)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차이는 중요하다 — 생태계 속에서, 경제 속에서, 종 속에서, 그리고 생명 속에서.
우리 모두가 감각적인 예술가에게 우리의 다락(loft)과 집과 메시지 가방을 설계하도록 맡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가 시름에 찬 시간과 장소 속에서 길을 읽어낼 수 있는 방향 감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 소개
도나 해러웨이 Donna Haraway. 해러웨이는 생물학자, 페미니즘 이론가, 문화 비평가, 과학 및 테크놀로지 역사가다. 1944년생으로 콜로라도 대학에서 동물학, 철학, 문학을 전공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크루스의 의식사학과 명예교수다. 인류학, 환경학, 페미니즘, 영상·디지털미디어학 등과 연계하여 다학제 연구를 진행해오면서 인문학과 기술의 접점을 모색하고자 했다. 저서로 《영장류의 시각》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 《한 장의 잎사귀처럼》 등이 있다.
역자 소개
소현. 원문의 단어와 문장이 마치 실뜨기 놀이처럼 정교하고 재치있게 짜여있어서 번역하는 내내 즐거웠고 또 많이 배웠습니다. 용어 및 개념 번역은 이미 나와 있는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해러웨이 선언문>(황희선 역), <다나 해러웨이, 곤란함과 함께하기>(최유미 저), <괴상한 친족들의 실뜨기 놀이>(임옥희 저)와 같은 좋은 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본문과 미주에 등장하는 여러 원주민 언어는 발음을 찾을 수가 없어서 원문만 옮겼습니다. 트러블(trouble)과 같이 의미 스펙트럼이 넓은 단어는 번역하기가 참 어렵다고 느낍니다. 심각한 어려움과 불안부터 재치 있는 말썽꾸러기까지 포괄하기에 트러블로 남겨두어야 할지 번역해야 할지 오래 고민했는데 역시 한국말인 곤란함으로 번역하는 편이 더 잘 읽히고 원문의 맥락에서 의미전달에도 무리가 없는 듯합니다. 한유리와 리타 님께서 부족한 번역을 읽어주시고 말을 보태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choisohyun222@gmail.com)
*이 글은 도나 해러웨이의 <Staying with the Trouble>( 2016)의 1장을 국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각주
1. 부분적 번역이 익숙한 언어에서, 실뜨기는 미국 영어로는 캣츠 크레이들(cat's cradle, 고양이 요람), 불어로는 쥬데피셀(juex de ficelle), 나바호 말로는 na'atl'o'라 한다. 해러웨이, 「SF: Science Fiction, Speculative Fabulation, String Figures, So Far.」 참고.
2. 크리터(Critters)는 골칫거리인 모든 야생동물을 칭하는 일상 속어다. 과학자들은 늘 자신의 '크리터'에 대해 이야기하고, 미국 전역의 보통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남부에서 더 많이 사용한다. 크리터는 '짐승(creature)'과 '창조물(creation)'에 묻어 있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다. 만약 그런 기호적 헛소리가 붙어 있다면, 긁어내자. 이 글에서 '크리터'는 잡다하게 미생물, 식물, 동물, 인간과 비인간, 심지어 어떤 경우, 기계까지 지칭한다.
3. 테라폴리스의 농담식 수학적 해설을 보고 싶다면 해러웨이, 『SF: Science Fiction, Speculative Fabulation, String Figures, So Far.』 참고.
4. 원시 게르만어와 옛 영어에서 온, 구만(guman)은 이후 인간(human)이 되었지만, 둘 다 흙과 흙의 크리터의 때가 묻어있으며, 후무스로 가득하고, 신과 달리 지상의 존재인 인간성(humaine)으로 가득하다. 히브리어에서 아담은 '땅'을 뜻하는 아다마(adamah)에서 유래한다. guman의 역사적 언어적 어조는 human 및 man과 마찬가지로 남성 젠더를 가리키며, 남성적/보편적이지만; SF세계짓기에서 adam, guman, adamah는 한 상에서 식사하며, 먹고 먹히는 반려종, 한솥밥을 먹는 동료, 퇴비 등 여러 젠더와 종류가 발효하는 미생물 군집에 가깝게 변한다. 푸익 들 라 벨라카사(Puig de la Bellacasa), 「Ethical Doings in Naturecultures」는 변형의 생명정치, 흙을 보살피고, 지구와 사람을 포함한 지구 상 많은 종을 배려하는 영속농업 운동에 관해 이야기한다.
5. 데스프레, 「The Body We Care for」, 데스프레, 「The Becoming of Subjectivity in Animal Worlds」. 데스프레는 내게 '유능해지기'를 포함해 그이상의 많은 것을 내게 주었다. '더불어-되기'에 관한 논의는 해러웨이 『When Species Meet』(16-17, 287) 참고.
6. 행위적 실제론과 내적 작용에 관해서는 바라드(Barad)의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참고.
7. 전통적 민족지학은 제인(Jayne)의 『String Figures』 참고.
8. Naabeehó Bináhásdzo (준자치국가 나바호국(Navajo Nation)의 지리적으로 정의된 법적 영토) 또는 Diné Bikéyah(사람들이 나바호랜드를 부르는 이름)는 콜로라도, 애리조나, 유타, 그리고 뉴멕시코로 둘러싸인 미국 남서부 네모서리 지역에 위치한다. 디네 창조 이야기 속 그물망에 새겨진 나바호 역사와 나바호의 역사에 관한 학문 연구 및 나바호 연구에 관해서는 데네데일(Denetdale)의 『Reclaiming Diné History』 참고. 인터넷에는 나바호 실뜨기 놀이와 실뜨기 모양에 관한 서로 다른 이야기와 이름에 관한 자료가 있는데, 예를 들어 「Diné String Games」와 방대한 「Library of Navajo String Games」가 있다. 연로 나바호 여성 마가렛 레이 보친클로니(Margaret Ray Bochinclonny)가 실뜨기 놀이를 하는 특별한 영상을 보려면 「Navajo String Games by Grandma Margaret」 참고. 마가렛 레이의 손자 테리 텔러(Terry Teller)가 나바호 실뜨기 별자리 모양을 설명하는 영상은 「So Naal Kaah, Navajo Astronomy」 참고. 나바호 실뜨기 놀이는 거미 여인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계절인 겨울에 주로 한다.
9. 양비둘기는 아마 수만 년 동안 사람과 서로 길들이는 관계를 맺어 왔으며, 오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쐐기 문자판에도 양비둘기가 기록되어있다. 이 장에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는 한 비둘기와 양비둘기라는 말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할 것이다. 비둘기과 가족에는 양비둘기를 포함하여 현재 살아있거나 화석화된 수십 가지 종이 있고, 여기에는 서른 종 이상의 현존하는 구대륙 비둘기와 양 비둘기 종이 있다. 어떤 비둘기과 종은 자연에서 폭넓게 서식하고, 또 다른 종은 특정한 요구조건을 충족해야 서식할 수 있어 협소하게 분포한다. 비둘기과 종류가 가장 다양한 지역은 인도말레시이사와 오스트랄아시안 생태구역이다. 사육 비둘기 역시 수십 가지 공식적이고 비공식적인 종류와 품종으로 다양화되었고, 이스탄불에서 도쿄, 런던에서 로스앤젤리스, 베를린에서 카이로, 케이프타운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전 세계적으로 서식하는 야생 비둘기 역시 마찬가지다. 업데이트된 비둘기 품종 목록이 궁금하다면 참고문헌의 위키피디아 항목을 참고하라.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 비둘기 품종에 관한 시각적 만찬을 즐길 수 있다. 사육 비둘기는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텀블러, 스피너, 롤러를 포함한 이 지역의 특정 품종에 관해서는 「Turkish Tumblers.com」을 참고하라. 2003년 이라크전쟁 이후로 바그다드의 비둘기 애호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새와 비둘기 경주 스포츠의 명맥을 이어왔는지에 관해 BBC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는데, 남성들의 비둘기에 대한 사랑의 구체적이고 유형적인 실천과 보살핌이 그대로 담겨있다. 무어(Muir)의 「The Pigeon Fanciers of Baghdad」 참고. 비둘기 경주 세계의 사회학적 민족지학에 관해서는 제롤맥(Jerolmack) 「Primary Groups and Cosmopolitan Ties」, 「Animal Practices, Ethinicity and Community」, 『The Global Pigeon』 참고. 비둘기 경주 경기장에서 도박이 성행하기 때문에 비둘기 경주는 현재 이란 정권에서는 (눈 감아주는) 불법이지만 오늘날까지, 그리고 수 세기동안 이란은 비둘기 경주의 열정적인 중심지였다. 이 환상적인 이야기에 관한 페르시안/불어 이중언어적 민족지학에 관해서는 구쉐기(Goushegir)의 『Le combat du colombophile』, 「World Market in Pigeons」 참고. 주로 비둘기 애호가가 작성한 비둘기 연구와 경주 비둘기에 관한 여러 정보 색인이 궁금하다면 「Racing Pigeon-Post」 참고.
10. 비둘기가 어떻게 이러는지에 관해서는 왈콧(Walcott)의 「Pigeon Homing」 참고.
11. 경주 비둘기 세계 속 범죄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스코토라인(Scottoline), 『The Vendetta Defense』 참고. 말론 브란도가 출연한 유명한 1954년 영화 『On the Waterfront』에서는 비둘기 경주를 하는 뉴욕 항구 노동자계급 부두노동자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 세계1차대전 중 북부 캐롤라이나에 사는 열두 살 여자 아이가 전서구(homing pigeon)를 기르고, 사랑하고 보호하는 이야기에 관한 여자 아이들을 위한 감동적인 역사적 미스테리 스릴러로는 엘리자베스 존스(Elizabeth Jones) 『Night Flyers』 참고. 그 여자 아이는 미국 국방부 메시지 서비스를 위해서 비둘기들이 야간 비행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한다. 서사 속에서 비둘기들은 선명하고, 완전히 구체화되어있으며 상호작용하는 존재이다.
12. 베르코프는 「Let's Hear」라는 글의 「Attachment」와 「Love」에서 이 세계 속 결혼의 젠더 구조를 바라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창문을 열어준다. 베르코프는 여러 대륙의 다른 비둘기 애호가의 아내들이 비둘기 경주, 비둘기, 자신의 남편과 비둘기를 돌보는 데 드는 노동과 비둘기를 돌보는 즐거움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조사했다.
13. 나는 크리터와 그 사람들이 협력하여 일과 놀이를 하는 이야기를 늘 욕망하고 있기 때문에, 그 협력의 거친 면과 어려움을 잘 발견하는 편이 아니다. 한 피죤블로그 팀 구성원은 비둘기들이 배낭을 맞추느라 깃털이 헝클어진 채, 짜증난 모습으로, 배낭을 메고 비행하도록 배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고 내게 비공식적으로 털어놨다. 그는 비둘기들이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내게 예술을 위한 것이든, 과학, 정치를 위한 것이든 — 아니면 셋 모두이든 — 간에 일과 놀이는 순진무구한 활동이 아니며 그로 인한 짐을 구성원이 공평하게 부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14. 이란의 스파이 비둘기 활동에 관해서는 햄블링(Hambling)의 「Spy Pigeons Circle the World」 참고. 다 코스타의 피죤블로그 프로젝트와 이란의 핵시설 위를 나는 공중스파이가 연결되어있다는 햄블링의 추측은 최대한 좋게 표현해서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미국이 첨단기술 원격 조종 스파이 드론과 잘 정비된 스파이 비둘기에 있어서는 이란에 뒤처지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물라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만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데네가(Denega) 『The Cold War Pigeon Patrols』 참고.
15. 마치 동물권 사람들로부터 동물과 동물-인간 세계짓기를 옹호하는 다른 이들을 분리하는 투쟁과 위치성이 명료하고 배타적인 것 마냥 그려내는 것은 너무 쉽고 또 사실과 다르다. 이 쟁점에 관한 동물을 사랑하는, 의견이 서로 다른 페미니스트간 논의가 궁금하다면 포츠(Potts)와 해러웨이의 「Kiwi Chicken Advocate Talks with Californian Dog Companion」 참고.
16. 호주는 유럽인이 처음으로 실뜨기를 기록한 대륙이다. 여러 원주민 언어에 실뜨기를 지칭하는 여러 단어가 있다. 예를 들어, 여칼라(Yirrkala) 말로는 matjka-wuma라고 한다. 데이비슨(Davidson), 「Aboriginal Australian String Figures」, 「Survival and Revival of the String Figures of Yirrkala」 참고.
17. 위키피디아, 「Batman's Treaty」, 「Batman Park」, 「Wurundjeri」 나는 한편으로는 내 무지함을 표시해두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결함이 있지만 훌륭한 도구에 감사한 마음으로 공개적으로 위키피디아를 출처로 표시하였다.
더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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