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행동




영이



/ : 이 시점에 다음 대사가 끼어 든다.

// : 끊고 들어온다



희수

P

의사



비가 온다.



무대를 십자로 4등분 했을 때, 오른쪽 위 방향 무대는 막혀있다. 조명은 어두컴컴하다.

희수는 오른쪽 위 방향의 막혀 있는 무대에 설치된 문을 열고 들어온다. P는 방에 앉아서 손에 폰을 들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희수: 저기요, 들어왔어요?

P: ...

희수: 들어왔으면 대답 좀 해요!

P: ...

희수: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요?

P: ...



희수, 다리에 힘이 풀리며 털썩 주저앉는다.



희수: 도통, 영문을 모르겠네..... / 왜 이러는 건지.....

P: 난 알아.



P의 말을 듣고 희수는 P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본다.



희수: 그래, 당신은 항상 알지! 나는 모르고!/

P: 아니, 그런 식으로 아는 게 아니라.....

희수: 알면 가르쳐 주면 되잖아! 언제까지 혼자만 알고 있을.....// 개소리 하지 마! 알고 모르고가 방식이 어디 있어?

P: 방식이 있으니까 말을 하지..... 넌 모르겠지만/ 인지하는 데는 방식이 여러 가지.....

희수: 미친 새끼야! 그래! 모르니까 말을 해달라고 안 했어? 내가 모른다 모른다라고만 하지 말고 그냥 알려 달라고!

P: 그러니까 이건 기본 대화 시스템의/ 문제야. 알려주려고 해도 단계가 있고 찬찬히 알려 주는 거지 너가 바라는 만큼 한 번에 전부 알려 주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

희수: 시스템? 시이스으테엠? 니가 뭘 그렇게 잘 안다고 혀 달린 대로 지껄이지? 그렇게 아무런 아는 말들이나 가져다 붙여서, 유식한 척 하면서 말하지 마! 집에 오면 한심하게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는 인간이! 뭘 안다고 대화 시스템이네, 뭐? 단계? 그딴 소리를 해 대!

P: 그럼 뭐라고 해야 되는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을 뭐라고 말해야지 잘난 척 하면서 말하는 게 아니게 되는데?

희수: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당신 스스로 찾아! 그렇게 실컷 잘난 척 해 놓고서 이런 건 생각해내기 귀찮으니까 나한테 물어보겠다?

P: 아니, 그럼 나는 누구한테 물어봐야 되는데?

희수: 스스로 찾으라고!

P: 예를 들어서 내가 잘난 척 했다고 해보자. 그래, 내가 잘난 척을 했어. 그런데, 내가 진짜로 잘난 척을 했다고 한다면, 지금 와서 내가 잘난 척 한 걸 인정하고 내 단어 선택을 정정할 것 같아? (희수의 코웃음 – 하!) 그리고 잘난 척이라고 했지? 그러면 내가 실제로는 멍청한데 그렇지 않은 척을 하는 게 되어야 되는데, 우선 내가 기본적으로 멍청한 게 되어버리면, 잘난 척하지 않고 말하는 법을 스스로 찾아 낼만한 능력이 있을 것 같아?

희수: 아니, 없겠지. 나도 당신한테 진심으로 찾아내라고 한 건 아니야. 나는 당신이 그걸 찾아 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럴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걸 요구할 수 있어. 요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는 그걸 요구해야만 해!

P: 누구를 위해서 그래야만 하는/ 건데?

희수: 나를 위해서! 뭐, 내가 당신을 위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P: 아니, 그건 아니지.

희수: 그래! 그건 아니야! 그러니까 이렇게 역겹게 잘난 척 하는 것 좀 그만 할래?

P: 나는 니가 말한 대로 멍청해서 잘난 척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낼 수가 없겠는데?



희수는 P를 침묵 속에서 미친 듯이 노려보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문으로 뛰어간다.



희수: 재수 없어.



희수는 문을 열고 나간다. 희수, 다시 들어온다. P는 폰을 든 채로 텔레비전 앞에, 옆으로 누워있고 희수는 P의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다.



P: 너 오늘 어디가?

희수: 그냥 나가.

P: 그니까 어딜.

희수: 카페 가, 카페.

P: 어디 카페.

희수: 아, 카페 간다고.

P: 그니까 어디 카페?

희수: (카페 이름).

P: 너 또 술 마시러 가?

희수: 아, 술 안 마셔.

P: 안 마시긴 뭘 안 마셔! 니가 거기 가서 술 안 마시고 온 적 있어?

희수: 오늘은 안 마셔!

P: 개소리하지마, 니가 그 소리한 것도 하루 이틀이야?

희수: 오늘은 안 마신다니까?

P: 지랄하고 자빠졌네. 알아서 해.

희수: 안 마신다고! 어! 내가 알아서 해!

P: 니가 안 마신 적이 있냐고!

희수: 오늘은 안 마신다니까!

P: 지랄하지 말라고! 내가 너 술 처마시는 거까지 돈 대줘야 돼?

희수: 누가 돈 대달래? 필요 없어! 술 안 마실 거니까!

P: 아, 예. 알아서 하세요. 돈 안 줄거니까.

희수: 어! 알아서 해! 내가 뭐 하던지 다 지랄이야!

P: 지랄?

희수: 어! 지랄! 지금 이게 지랄이 아니면 뭔데? 내가 술 안 마신다고 했잖아!

P: 니가 거기 가서 술 안 마시냐고?

희수: 오늘은 안 마신다고!

P: 개소리하지 말라고.

희수: 아니, 씨발. 알아서 한다고.

P: 가서 술 드시고 오세요.

희수: 씨발, 술 안 마신다니까!

P: 드시고 오시라고요. 내가 지금 건수 주잖아.

희수: 아, 씨발, 안 마신다고. 씨이발 안 마신다고.

P: 니가 애나 안 마신다니까?

희수: 씨발, 안 마신다고!

P: 알아서 하시라고요.

희수: 알아서 한다고! 알아서 씨발 안 마신다고!

P: 애나 그러시겠다고?

희수: 개씨발.



희수, 문을 열고 나간다. P는 눈을 감고 잔다. 문이 희수의 뒤에서 닫히는 동시에 다시 희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희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른쪽 앞 무대 중앙에 앉는다. 한참을 있다가,



P: 왔어?

희수: ...

P: 무슨 일 있었어?

희수: ...

P: 야, 무슨 일 있었냐고.

희수: ...아무 일도 없었어.

P: 없기는 뭐가 없어? 오면 항상 밖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잔뜩 떠들던 애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빨리 말해.

희수: 아무 일도 없었다고.

P: 그러면 왜 인상 쓰고 있는데?

희수: 인상 안 쓰고 있어.

P: 인상 안 쓰고 있다고? 니 표정을 보고서 말해.

희수: 인상 안 쓰고 있다니까.

P: 뭐? 사진 찍어서 보여 줘?



P가 들고 있던 폰을 희수에게 들이대고 사진을 찍으려 한다.



희수: 하지마.



희수는 P를 막으려 하나 P는 멈추지 않는다.



희수: 하지 말라고!



희수가 소리를 지르자 P는 잠시 멈추더니 폰을 벽에 집어 던진다.



P: 미친년이 밖에서 있었던 거 갖다가 왜 나한테 승질이야!



멈춤.



희수: 내가 언제 승질 부렸는데!

P: 너 방금 소리 질렀어, 안 질렀어?

희수: 그게 밖에서 있었던 거 갖다가 승질 부린 거야? 나한테 시비거니까/ 소리 지른 거 아니야!

P: 야, 너가 평소에 이런 걸로 승질 부리는 애냐? 그리고 시비? 이게 시비 건거라고?

희수: 이게 시비 건 게 아니면 뭔데? 그리고 내가 평소에도 이렇게 시비 걸면 소리 안 지르냐?

P: 무슨 일이 있었으면 말을 하라고!

희수: 말 바꾸지 마! 지금 이게 시비건 게 아니면 뭐냐니까?

P: 너야말로 말 바꾸지 마! 내가 처음에 너한테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봤는데 그거 너가 대답했어?

희수: 대답했잖아! 없었다고!

P: 없었다고? 그러면 나도 시비건 거 아니야!

희수: 시비를 안 걸었다고? 그렇게 사람 얼굴에 폰 들이대는 게 시비거는 게 아니라고?

P: 너는 그렇게 인상 쓰고 있으면서 아무 일 없었다고?

희수: 내가 인상 안 쓰고 있었다고 말 했잖아!

P: 나도 시비 안 걸었다고 말 했잖아!

희수: 받아들이는 사람이 시비 걸었다고 하면 시비 건거야! 시비 건 사람이 지가 시비 걸었다고 말하겠냐?

P: 나도 니 표정 받아들이는 게 인상 쓰고 있었다고 받아/ 들인...

희수: 나는 당신 보라고 표정을 짓는 게 아니거든!

P: 야, 그러면 나가. 나가서 너 짓고 싶은 표정 마음껏 짓고 살아.

희수: 미치겠다. 표정이 마음에 안 드니까 나가라고?

P: 표정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나가라는 게 아니라, 인상 쓰고 있는 이유를 말하라니까?



희수가 문을 열고 나갔다가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온다. 희수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다. P는 계속해서 텔레비전을 향해서 누워 있다. P의 뒤에서 희수는 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한참 그어서 팔이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희수는 자신의 팔을 깨끗이 닦은 뒤, 바닥에 주저앉는다. 잠시 뒤 소리를 지른다. P는 희수를 본다.



P: 야! 너 미쳤어?

희수: 그걸 말이라고 해? 나 미쳤어!

P: 아! 씨발! 왜 그러는지 말을/ 하라고!

희수: 꼭 내가 말을 해야지 알겠어?

P: 너가 밖에서 있었던 일을 말을 안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희수: 모를 거면 궁금해 하지마!

P: 모르니까 궁금해 하지, 알면 궁금해 하니? 그리고 너도 내가 알기를 원하지 않으면 이러지를 마!

희수: 알기를 원하니까 이러지!

P: 그러면 말을 해!

희수: 싫어!

P: 야! 너는 너만 지랄할 수 있을 거 같냐?



P가 희수의 칼을 뺏으려 한다. 희수는 칼을 자신의 목에 겨눈다. P는 물러선다.



P: 내려 놔.

희수: 내가 진짜로 못 찌를 것 같지?

P: 그러니까 내려 놔.

희수: 가까이 오지마.

P: 경찰 부를 거야.

희수: 불러!



P가 집어던진 폰을 집으러 간다. 희수는 칼을 바닥에 집어 던진다.

P는 칼을 집어서 문 밖으로 나간다. 한참 후에 손에 붕대를 들고 나온다.

희수는 그대로 서 있고, P는 희수의 팔에 붕대를 감아 준다.



P: 무슨 일인지 말해주면 안 돼?

희수: (눈을 허공에 향하고)...



희수는 가만히 서 있다가 천천히, 힘없게 걸어서 밖으로 나간다.

P는 다시 폰을 든 채로 텔레비전 앞에 눕는다. P는 지금까지 눈을 한 번도 뜨지 않는다.

희수는 붕대를 푼 채 문으로 들어온다.



희수: 아..... 오늘 너무 늦었네요.....

P: (일어나서 텔레비전을 향해 폰을 집어 던지며) 씨발! 아아악! 내가 일찍 오던가 아예 내일 오랬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아악!

희수: (말투가 점점 강해지며)그런 당신은 내가 일찍 자야 될 때 일찍 오던가 다음 날에 온 적 있어?/ 없잖아!

P: 그때랑 지금은 같이 생활하는 거만 같지 지금이랑 상황이 아예 다르잖아! 미친년아! 비교할 걸 비교하란/ 말이야!

희수: 상황이 뭐가 다른데? 일어나기 싫은데 일어나야하고, 자고 싶은 만큼 못 자는 건/ 똑같잖아?

P: 니가 그렇게 매일 나가서 돈을 벌었니? 난 씨발 지금 내가 쓸 일도 없는 돈을 벌고 있다고!

희수: 누가 벌으랬어/ 라고는 말을 못 하겠지, 아니 말을 못 한다고, 그렇게 말을 한 게 아니라 그렇게 말을 못 한다고 했잖아? 내 말 들었어? 내 말 들었냐고?

P: 그럼 너는 누가 나가랬어? 결국 밖에서 뭘 겪었든 넌 아무런 득도 없이 밑빠진 독이 되어 갔을 뿐이야! 넌 지금도 그때의 밑빠진 독이고 나는 지금 돈을 벌어서 그 독에 퍼 붓고 있을 뿐이지! 누가 벌으랬냐고? 안 벌면 어떻게 할 건데? 나가서 죽을 거야? 니가 그거 말고 선택할// 그래 너 말 들었어! 누가 벌으랬어라고 말을 못한다고 붙였다고 해서 니가 진짜 그런 생각을 안 했다는 게 말이 되니? 니가 생각하지도 않은 말을 뱉을 수 있단 말이야? 내 앞에서 되도 않는 위선/ 부리지마!

희수: 위선 부리는 게 아니야! 그래! 내가 벌으랬지! 당신이 버는 돈 다 나를 위해서 버는 거 맞다고 쳐!/

P: 맞다고 치자고? 맞다고/ 치자고?

희수: 우선 맞다고 쳐! 우선 맞다고 치자고. 당신이 뼈 빠지게 일해서 푼돈 벌어 오는 게 나를 위한 거라 쳐! 그러면 그랬다고 해서 내가 일찍 나갈 때 당신을 위해서 나간 게 아니라고 말을 할 수가 있어?

P: 있지! 너는 너를 위해서 나갔을 뿐이야!

희수: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당신도 똑같이 당신을 위해서 나갔을 뿐이야!

P: 아니이! 애초에 너는 돈을 벌어 온 적이 없잖아!

희수: 꼭 내가 돈을 벌어야지만 당신과 내가 같아지는 거야? 당신의 기준은 그것뿐이야?

P: 이건 내 기준이 아니라 현실의 기준이야! 뭘 하든지 돈을 벌고 못 벌고는 천지차이라고! 그딴 개소리로 우기지마!/

희수: 우긴다고? 우기는 건 당신이야! 현실의 기준 같은 소리하네! 현실이 어딨고 기준이 어딨어? 그런 것들, 다 당신이 당신 편리하자고 만들어 낸 기준들일 뿐이잖아! 그런 게 정확히 있다고 증명해 줄 것 따위는 전혀 없어!

P: (소리 지르며) 미친! 씨발! (외친 후에는 갑자기 냉정을 되찾고 다시 눕는다.) 나 자야 돼. 너랑은 다르게 나는 내일 일찍 일어나야 되거든.

희수: ...



희수는 P가 눕는 것을 쳐다보지도 않고 문으로 나간다.

희수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마자 P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문으로 나간다. P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마자 희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희수의 양손에는 비닐봉지 두 개가 들려 있다.

희수는 무대 막의 모서리 앞에 앉아서 비닐봉지에서 가스를 꺼낸다.

비닐봉지에 가스를 뿜고 들이 마시기를 반복한다. (들이 마실 때에는 모서리에 등과 머리를 기댄다.)

몇 차례 반복해서 가스를 흡입하다가 눕는다.



문을 향한 조명을 제외한 조명이 모두 꺼지고, 희수는 그대로 누워 있는 채 P가 문을 열고 들어와 문을 보고 선다.



P: 야, 안 가?

희수: ...

P: 안 갈 거냐고.

희수: ...

P: 야, 지금/

희수: 갈, 거야

P: 갈 거면 늦지 않게 빨리 가지 뭐/ 하고 있어?

희수: 싫어.

P: 뭐?

희수: ...

P: 뭐라고 했어?

희수: 안 했어.

P: 뭐라고 했잖아.

희수: 아무 말도 안 했어

P: 넌 내가 바보로 보이니? 뭐라고 했/ 잖아.

희수: 내가 뭐라고 했는데?

P: 뭐?

희수: 바보 아니라며? 내가 뭐라고 했는데?

P: 그걸 내가 알면 왜 물어 봐!

희수: 바보 아니라며? 그러면 들었다는 소리 아니야?

P: 아무 말도 안 한 게 아니라는 것만 알지, 무슨 소리 했는지는 못 들었어. 그리고 바보 아니라고 한 것도 너가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하니까 한 소리 아니야.

희수: 아, 그래?

P: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희수: ...싫다고.

P: 가기 싫다고?

희수: 어. 가기 싫어.

P: 야, 가기 싫으면 가지 마.

희수: 너가 뭔데 가라 마라야. 갈 거야.

P: 싫은데 왜 가?

희수: 싫다고 안 가면 어떻게 되는데? 그러면 아무것도 안 될 뿐이잖아.

P: 너 하고 싶은 거 해. 하기 싫은 거 하지 말고. 인생 짧아. 하기 싫은 거 하면 시간 낭비/ 일 뿐이야.

희수: 그래, 시간 낭비지. 내가 하고 있는 거 시간 낭비 맞아. 그런데 계속 해야 돼.

P: 왜 해야 되는데?

희수: 내가 지금 이거 말고 할 게 뭐가 있는데? 다른 거/ 할 거 없어.

P: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고 싶은 거 없어? 너 맨날 하고 싶다고/ 한 거 있잖아.

희수: 하고 싶은 거 많지.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하기 싫은 거 밖에 없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안 될 뿐이고.

P: 그래, 너도 잘 알고 있네.

희수: 뭘?

P: 너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밖에는 없다는 걸. 그리고 그걸 해야만 한다는 걸 알면, 있잖아, 그냥 닥치고 해.

희수: 뭐?

P: 그냥 닥치고 하라고./ 이렇게 하기 싫다고 지껄인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희수: 싫은데? 닥치고 하는 거 싫고, 나는 지금 존나 지껄이면서 할 건데?

P: 그러면 나 안 보이는데서 하던가 안 들리게 해. 이렇게 좆같은 꼴 보이지 말고.

희수: 니 눈에도 지금 이게 좆같아는 보이니?

P: 너가 맨날 떠드는게 좆같다는 건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안 보겠니?

희수: 너는 내가 하는 말만 듣고 좆같다고 아는 거지, 내가 실제로 얼마나 좆같은지는 한 번도 본 적 없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막 말하는 거 아니야?

P: 내가 그걸 왜 봐야 되니? 그건 니 일이지 내 일이 아니잖/ 아.

희수: 니 일 아니니까 참견하지 마.

P: 그래, 내 일 아니니까 너도 신경 쓰이게 하지 마.

희수: 내가 언제 신경 쓰이게 했는데?

P: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신경 쓰이게 하는 거지, 아니면 뭔데?

희수: 니가 안 보면 되잖아.

P: 니가 안 보이는 데 가서 해. 여기 내 집 앞이야.

희수: 그래, 나는 또 나가야겠지. 또. 좆같은 데로.

P: 아니, 나가기 싫으면 나가지 마. 안 나가고 이러고 있지 않으면 되잖아.

희수: 나는 이러고 있고 싶어. 나가기는 싫고.

P: 너 어차피 나갈 거잖아. 피할 수 없으면 즐겨.

희수: 뭐?

P: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희수: 씨이발. 좆이나 즐겁다.

P: 즐거우면 웃으면서 나가.

희수: 흐흐, 씨발.



P, 문을 닫았다가 문을 다시 열고 나간다.



암전



누운 자리에 희수는 그대로 있고, 조명은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창백하게 밝아진다.

문을 열고 의사가 들어온다.

의사는 누운 희수의 옆으로 향한다. (의사는 대화 도중에 단 한 번도 희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자신이 작성하고 있는 일지에만 집중한다.)



의사: 왜 그러셨어요?

희수: ...

의사: 최근에 우울증을 겪으셨나요?

희수: ... 아니요.

의사: 정말 자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시고 한 행동인가요?

희수: ... 네.

의사: 혹시 왜 그러셨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희수: ...

의사: (일지를 뒤적거리더니) 저희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으신 적이 있고 우울증 진단을 받으신 기록이 있으신데, 왜 거짓말을 하셨죠?

희수: 저는 우울증 같은 거 걸린 적 없어요.

의사: 그게 아니라, 진단서에/ 써 있는 바에 의하면....

희수: 전, 우울증 걸린 적 없다고요. 우울한 적도 없고요.

의사: 지금 환자 분의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때 작성된 진단서에/ 의하면 희수 씨는 우울증 경력이 있어요.

희수: 상황은 변한 적 없어요. 저는 전에도 지금도, 우울한 적 따위는 없어요.

의사: 그러면 왜 가스를 흡입하셨던 거죠?

희수: ...

의사: (이러한 대화가 너무 싫증나서 더 이상 더 싫증날 것도 없다는 듯이) 우선은 환자 분이 입원을 하든 그냥 치료만 받고 가든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데, 보호자 분이 입원하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했고, 그냥 적절한 치료만 받는 게 좋겠다고 하셨어요. 환자 분도 동의하시나요?

희수: ...

의사: 대답을 해주셔야/ 지.....

희수: 네.

의사: 알겠습니다.



의사 문을 열고 나간다.



희수는 벽에 기댄 채로 누워 있던 자세에서 바닥에 온 몸을 펴고 눕는 자세로 몸을 움직인다.



의사복을 입은 P가 문을 열고 나온다.



P: 희수야.

희수: ...

P: 야.

희수: ...

P: 너 대답 안 하면 입원, 시키자고 할/ 거야.

희수: 뭐.

P: 왜 그랬어?

희수: ...

P: 왜 그랬냐고?

희수: ...

P: 또 대답 안하/ 네.

희수: 당신이 담당 의사도 아닌데 그런 질문에 내가 일일이 대답을 왜 해야 돼?

P: 말했잖아. 너는 내가 일하는 걸로 먹고/ 사는...

희수: 다시 말하지만, 누가 그렇게 해 달랬어?

P: 너가 해 달라고 하지 않았어도 내가 해주면 조금이라도 고마워해야 되는 거 아니야?

희수: 어. 아니야. 당신은 나에게 지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뿐이고, 나는 그것을 고맙다, 은혜롭다, 이딴 식으로 생각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

P: 아, 씨, 내가 뭘 해주지 않았어도 같이 사는 사람이 왜 죽으려고 했냐 하고 물어보면 대답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너는 왜...

희수: 난 내 의사한테도 아직 말 안 했어. 나도 아직 모르는 걸 너한테 대답하려고 굳이 만들어내야 하니?

P: 그럼 모른다고 이야기를 했으면 됐지. 너가 그렇게 말해 줬으면 내가 더 안 물어봤을 거 아니야.

희수: 그니까 너가 담당 의사냐니까? 담당 의사한테니까 모른다고까지 얘기 했지, 내가 너한테면 왜 얘기해야 되냐고?

P: ...

희수: 당신은 당신이 법적 보호자라고 해서 진짜 당신이 내 보호자라도 되는 줄 아는가 본데, 그딴 착각하지 마!

P: ... 나는 너가 처음 이랬을 때에 이유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억울해서라도 지금 너한테 이유를 물어보는 거야. 그 때에 있던 문제는 이제 없는데/ 너는 왜 아직도 이러는 건지 궁금하다는 말이야.

희수: 나는 꼭 그 문제에 대해서만 이렇게 해야 하는 거야? 다른 이유가 생겼을 수도 있고, 이유가 아예 없을 수도 있는 거야! 그때 당신이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해서 내가 지금도 당신한테 주절거려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P: 넌 왜 변했/ 어?

희수: 당신은 왜 안 변했어! 왜 당신은 그대로야! 왜 당신은 발전도 퇴화도 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만 붙박혀 있는 거야! 나는 이제 당신의 같은 모습이 내 눈에 달라붙어서 잔상이 되어 버릴 지경이라고!

P: ... 너는 젊잖아.

희수: 당신은 안 젊어? 당신이랑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그딴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P: 나는 똑같이 젊어도 살 시간이 너보다 짧아.

희수: 뭐?

P: 예를 들어, 예를 들어 내가 너처럼 자살을 한다고 해보자. 예를 들어 내가 어느 나이가 되면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고, 그 때에 대한 준비를 평생 해 와서 지금도 하고 있다고 쳐 보자. 그러면 너는 내가 실패할 거 같니? 너처럼 도중에 잠들어 버리거나, 아파서 그만둘 거 같니? 아니면 성공적으로 했을 때, 내가 널 살렸듯이 날 살릴 사람이 있을 거 같니? 이것은 예일 뿐이지만, 너가 자살하려고 하는 의지가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도 있을 수 있는 당연한 의지라고 생각한다면 너는 왜 내가 너보다 오래, 아니, 너랑 비슷하게라도 살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야?

희수: 야, 너가 죽으면 나도 죽어. 그건 알지?

P: (코웃음 치며) 그래, 그러시겠지. 그 때는 지금처럼 너를 발견해서 응급실에 데려다줄 사람이 없을 테니까.



사이



P: 아무튼 너가 내가 안 변한다고 했지? 나는 앞으로 살 시간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지금의 나로 살지 않고 다른 나로 살게 되었을 때, 나는 충분히 적응할 시간이 없어.

희수: 자랑이다.

P: 그래, 자랑이지. 너도 지금 이게 자랑 아니야?

희수: 자랑이지.

P: 그래, 대단하다.

희수: (가운데 손가락을 P에게 쳐든다.)


서로를 응시하며 암전.






필진 소개
영이. 폭력과 고통, 그리고 분열의 상관 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월간 종이』 제작. https://monthly-paper.tumblr.com/